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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요한 혁신위원장 내정 프로필 나이 아내 이지나

by 소 름 2023. 11. 6.

인요한 혁신위원장 내정 프로필 나이 아내 이지나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 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가 내정됐습니다. 국민의힘은 최고위 의결이 나면 인 교수를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할 예정입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오늘(23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의 진실한 변화를 만들어 갈 혁신위원장으로 인요한 교수님을 모시고자 한다"고 밝혔습니다.

김 대표는 "대한민국 특별귀화자 1호 인요한 교수는 한국에 대한 오랜 봉사와 헌신으로 보수·진보 정부를 망라해 많은 훈장을 받은 바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정치개혁 필요성에 깊이 공감하고 투철한 의지도 갖고 계신 만큼 우리 국민의힘을 보다 신뢰받는 정당으로 재탄생시키는 데 최적의 처방을 내려주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대표는 또 "인 위원장을 중심으로 꾸려질 혁신위는 위원회의 구성, 활동 범위, 안건과 활동 기한 등 제반 사항에 대해 전권을 갖고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판단을 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인정많은 나이의 아내 이지나 순천가족 입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겸 국제진료센터 소장 인요한입니다.

전라북도 순천에서 선교사 활동을 하던 아버지에 의해 1959년 태어날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순천에서 자라 고소한 전라도 사투리가 입에 담았던 자칭 전라도 태생 의사입니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4년간 전문의 과정을 수료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줄곧 한국에 살고 있는 인요한 교수는 출생 당시 미국 국적이었지만 대한민국 사회에 끼친 공로(한국형 구급차 구급차 구급차 구급 개발 등)를 인정받아 '특별 귀화'하여 한국 국적과 미국 국적을 모두 가진 복수 국적자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해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 중 연락이 끊긴 친구를 찾으러 나선다고 합니다.

인요한프로필을간단히보면요.

1959년 12월 8일생으로 올해 61살입니다.

고향은 전라북도 전주시 출생입니다. 미국과 한국의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료는 개신교(장로회)입니다.

학력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원 의학박사, 현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직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인요한이 키가 190cm가 넘는 거구래요.







인요한 가족을 보면 4대째를 이어 우리 역사 속에서 함께 걸어오고 교육의료 봉사활동을 하며 사회 발전에 기여해 왔습니다. 그 면면을 보면 놀라요.

인요한 외증조부 유진 벨은 스코틀랜드계 미국인 선교사로 1895년 4월 8일 한국에 파견되어 광주 목포지역에서 활동하면서 학교와 병원을 설립하였습니다.







할아버지 윌리엄 린튼은 22살 때 한국에 와서 48년 동안 전주와 군산 일대에서 선교와 교육, 의료봉사를 해왔고 유진 벨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의 주치의 역할을 하거나 3·1운동 당시에는 기미독립선언서 작성 참여와 운동 지원, 해외에 홍보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합니다.. 이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고난을 겪은 적이 있는데,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3.1운동 91주년 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습니다.





인요한의 아버지 휴링턴은 할아버지의 선교활동의 영향으로 전라북도 군산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가 해군 장교학교를 졸업하고 신학대학에 다니던 중 한국전쟁 소식을 듣고 해군 장교로 복귀하여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다고 합니다. 그와 함께 할아버지 윌리엄 린튼의 선교활동을 이어왔고, 인요한의 할머니는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아버지 휴링턴은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미국인이지만 어머니 로이스링턴은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미국인으로 결혼을 통해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이주하여 현재도 한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인요한 형 인세방은 북한 어린이에게 의약품을 보내는 유진벨재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4대 인요한 자신은 2012년 한국 사회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특별귀화를 통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나의 고향은 전라도'라는 책을 쓸 정도로 고향 전라도에 대한 애정이 깊은 인요한은요.

호남의 굴곡진 현대사와 삶을 함께 했습니다. 대학 재학 중 5·18 민주화운동 소문을 듣고 광주로 몰래 들어가 당시 참혹했던 현장을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고 시민군 영어 통역을 맡기도 했습니다. 이게 훗날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찍혀 시위주도죄로 추방될 뻔했는데, 심지어 당시 냉전구도 속에서 대한민국의 정치적 안정을 바라던 미 대사관으로부터 너 폭동의 주동자다!라고 비하당하기도 했다고요.







이때 국외추방을 당할 것인지, 당시 광주폭동 주동자에게 잡힐 것인지 경찰에 사찰당하는 조건으로 고향 땅에서 근신할 선택지가 있었는데, 당시 인요한은 고향 전라도를 떠나지 못하고 고향 순천 시골에서 근신하고 은둔하기로 선택했다고 합니다. 훗날 기무사 요원이 인요한을 사찰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는데 사찰만큼은 아니고 살생부에 이름이 올라 있었다는 사실, 군에서 널 죽이려고 준비를 마쳤다는 끔찍한 얘기까지 들었다고요.



인요한은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이에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찬양하기도 하고 박근혜를 지지하기도 했으며 햇볕정책을 쓴다고 북한이 핵을 포기할 리 없다고 주장하며 국민건강보험을 해체하고 의료민영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큰 영향과 뿌리인 지역 기반에서는 호남인들의 정서를 깊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제 가족이 하고 있는 유진벨재단의 영향과 전라도에 대한 애착과 5.18 시민군 통역관을 담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보수정권 시절 보수언론이 자주 초청했을 때도 인도적 차원의 대북 의료지원 문제로 시비를 걸 경우 자신은 의사이므로 대북 의료지원은 북한 어린이들이 걸리지 않는 질병을 앓지 않고 살기 위해 계속돼야 한다고 반박했습니다. 특히 당시 5.18민주화운동 비하 발언을 유도하는 보수언론에 대해 북한 사주나 개입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적극 반박했습니다.













인요한은 최초의 한국형 구급차를 개발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한국형 구급차 개발의 계기가 된 사정입니다만...교통사고를 당한 아버지가 병원으로 이송중 택시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만.. 당시 한국에는 환자를 이송하면서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구급차가 없었고, 인요한은 아버지를 헛되이 보낸 마음에 다시는 이런 죽음이 없기를 바라며 한국형 구급차를 제작하게 됐다고 합니다. 1993년 구급차를 순천소방서에 기증하면서 신성한 보복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